“회색 도시 속 그녀가 신은 민트색 나이키 슈즈.”(래퍼 빈지노의 ‘나이키 슈즈’)
지금 당장 누군가의 신발장을 열어보더라도 하나쯤 진열돼 있는 신발이 있다. ‘나이키 운동화’다. 한때 스포츠 정신을 상징했던 나이키가 힙합 문화 등 대중문화에 침투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나이키가 본격적으로 한정판 운동화를 내놓으면서 2차 시장인 리셀(재판매) 시장 급팽창의 원동력이 됐다. 글로벌 운동화 리셀 시장은 2019년 2조4000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 7조20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발이 좋아서 삼성전자 뛰쳐나온 와디
‘와디의 신발장’이라는 유튜브 채널(구독자 21만 명)을 운영하는 패션MCN 오리지널랩의 고영대 대표(39)는 “나이키 운동화가 좋아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뛰쳐나왔다. 그가 회사에 사직서를 낸 것은 작년 말이다. 고 대표는 “불투명했지만 한국 스니커즈 시장에서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재밌어 보였다”고 말했다.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NBA를 보며 나이키 운동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시카고 불스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신는 나이키 농구화를 갖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1990년대의 NBA는 운동화의 전쟁터였다. 그중에서도 마이클 조던이 광고모델로 있는 나이키가 가장 인기였다.
고 대표는 제주 자택에 500켤레 이상의 나이키 운동화가 있을 만큼 수집광이다. 가장 아끼는 수집품 중에는 현재 리셀 시장에서 1700만원대에 거래되는 ‘에어디올’ 신발도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과 나이키가 협업한 운동화로 시중에 유통되는 수량은 8000족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 대표는 “에어디올을 사기 위해 가지고 있는 30켤레 신발을 팔았다”고 말했다. 한정판 신으면 내 존재가 특별해진 기분
‘왜 나이키 운동화를 웃돈을 주고 구입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나이키의 한정판 마케팅에 있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운동화’를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스니커즈 온라인 커뮤니티인 풋셀에서 ‘카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나모씨(38)는 “학창 시절에는 운동화 밑창에 공기를 넣는 나이키의 기술력에 매료됐는데 최근에는 한정판 마케팅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는 200켤레의 나이키 운동화가 있다. 나씨는 “수백만원의 웃돈이 붙은 한정판 운동화를 신으면서 ‘특별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나이키 운동화에는 모두 역사가 있다. 나이키 운동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품은 ‘에어 조던1 시카고’(1985년)다. ‘발매’ 당시 65달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만달러(약 2300만원)에 거래된다. 1985년은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위해 ‘에어 조던1’을 개발한 해다. 나이키 운동화 중에서도 빨간색과 흰색 조합이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이유도 그가 시카고 불스 시절에 입었던 유니폼 색과 같기 때문이다. ‘에어 조던1 유니버스트 블루’는 조던이 속해 있던 대학팀인 노스캐롤라이나를 상징하는 하늘색과 흰색의 조합을 표현했다.
커지는 운동화 리셀시장
나이키 운동화를 사고파는 행위는 이제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변하고 있다. 나이키의 힘은 다양한 콜라보에서 나온다. 가수 지드래곤과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레비스 스콧 등이 협업하면서 10~20대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만든 ‘에어포스 파라노이즈’ 제품은 리셀 시장에서 최고가 2000만원대에 거래된 적도 있다. 제품 발매 가격이 20만원대임을 감안하면 무려 100배 이상 오른 가격에 팔린 셈이다.힙합 뮤지션은 요즘 운동화 리셀 시장의 흥행 보증수표다. 나이키 운동화를 창고에 쌓아두는 힙합 뮤지션도 많다. 그룹 지누션의 션과 다이나믹듀오의 개코 등은 연예계에서 소문난 나이키 운동화 애호가로 꼽힌다. 창고에 수천 켤레의 나이키 운동화가 쌓여 있을 정도다. 10~20대는 연예인들이 신은 나이키 운동화를 리셀 시장에서 구매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10대들은 나이키 홈페이지에 접속해 한정판 운동화에 응모하는 식으로 운동화를 얻는다. 고 대표는 “명품처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이 이 시대의 멋이 됐다”며 “NBA로 시작한 나이키 수집 문화가 힙합으로 인해 10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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